이희호 여사 별세 사회장, 北 측에서 조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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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대중 前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님께서 (향년 97세)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지난 노환으로 지난 3월부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수차례 하셨는데 몇 일 전부터 의식이 없으셨는데 9일부터 병세가 악화되셨고 10일 오후 별세하셨는데요.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는데 권노갑 전 의원과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하여 장례위원회를 구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님의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6시며 장지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입니다.

故 이희호 여사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님은 1962년 부부가 되셨으며 이희호 여사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야당 지도자를 하실 때 투옥과 가택연금, 망명 등을 하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바라지를 도맡아 하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모진 세월을 함께 하신 여성 인권운동가 셨는데요.

이희호 여사님은 1997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시면서 1998년 2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영부인으로 남북교류와 평화와 인권 신장을 하는데 기여하셨다는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로 탄압을 받다 1972년 일본으로 망명하셨고 197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도쿄에서 납치를 당해 배로 한국으로 오던 중 생사의 고비를 맞아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무사히 한국으로 오셨던 김대중 도쿄 납치사건은 우리 국민에겐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1976년 3월 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명동성당에서 윤보선, 문익환, 함석헌, 김승훈, 안병무 등과 중심으로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민주 구국선언문을 발표한 사건으로 투옥당하셨을 때 이희호 여사님은 옥바라지를 도맡아 하시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용기를 주시며 정치적 지지를 하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전두환 군부독재는 1979년 5.18 광주 민주항쟁을 왜곡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를 하였다며 투옥했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였던 인사들은 모진 고문을 받은 뒤 투옥되었고 이때 이희호 여사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면회를 다니셨고 편지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전두환 군부독재에 의해 1982년 정계를 은퇴하고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시다 1985년 귀국했지만 가택연금을 당하셨을 때 이희호 여사님은 정치적 동지였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비통해하셨고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직을 맡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아 남북 평화 증진과 빈곤 퇴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때 이희호 여사님은 동행을 하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에도 6.15 공동선언 실천과 남북 간 화해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이희호 여사님은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방북을 하셨고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궁전으로 가셔어 당시 상주였던 김정은에게 조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2015년 8월 이희호 여사님에게 친서를 보내와 이희호 여사님이 방북하기도 했는데요.

이희호 여사님의 장례식에 북한 측에서 조문을 올지 관심인데 이희호 여사님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했고 김정은에게 조의를 표했기 때문에 북한 측에서 이희호 여사님 장례식에 조문을 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희호 여사님을 애도하며 추모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